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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ing/Food & secret

쫀득쫀득한 우동·호떡·빵 비결은 바로 타피오카 녹말!

by lisa311 2010. 3. 4.

 

이번 역에서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안내방송이 나온 뒤 주어진 시간은 불과 2∼3분. 후다닥 정거장으로 뛰어나가 후루룩 우동 한 그릇을 비워냈다. 기차가 언제 떠날지 몰라 살짝 긴장한 채 발을 동동 구르며 뜨거운 면발을 후후 불어 먹었다.

10여년 전 한겨울 기차여행을 떠나본 사람은 기억 속에 이런 장면 하나쯤 담겨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우동의 면발, 약간은 퍼석하고 젓가락에 살짝만 닿아도 뚝뚝 끊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사실 그리 맛있는 면발은 아니었구나 싶다.

요즘 우동은 다르다. 쫄깃쫄깃하고 탱탱한 게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뭐가 달라졌을까. 비결은 녹말(전분)에 있다.

한국 입맛 사로잡은 타피오카

면발에서 쫄깃한 식감을 내는 주요 성분은 녹말이다. 옛날 기차역 정거장 우동가게와 요즘 우동전문점의 면발 차이가 바로 녹말이라는 얘기다. 밀가루만 갖고 면을 만들면 퍼석하고 잘 끊어지지만 녹말을 첨가하면 끈기가 생기고 쫄깃해진다. 우동뿐 아니다. 요즘엔 빵과 라면 도넛 호떡 아이스크림에도 모두 이런 쫄깃쫄깃한 식감이 가미됐다.

2002년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대부분의 베이커리에 빠른 속도로 입성한 일본 빵이 있다. 이름도 독특한 '깨찰빵'. 별다른 홍보나 이벤트가 없었는데도 입소문을 타고 깨찰빵은 순식간에 동네 구석구석 빵집까지 점령했다.

깨찰빵의 성공 비결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씹는 맛이 빵 같지 않다는데 있다. 오히려 떡이랑 더 비슷하다. 보슬보슬 부드럽거나 바삭바삭 단단한 빵만 맛 봐왔던 사람들은 떡처럼 쫀득쫀득한 깨찰빵의 매력에 푹 빠졌다.

지난해부터 전국 홈플러스 매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쫄깃쫄깃 찰호떡'도 발효과정 없이 바로 구워 먹는 간편함과 특유의 차진 식감 덕분에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기존의 호떡 프리믹스 제품을 위협하고 있다. 이 호떡과 깨찰빵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재료 역시 '타피오카'라는 외국산 녹말이다.

타피오카는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서 자라는 열대농작물인 '카사바'의 덩이뿌리에서 추출한다. 카사바의 덩이뿌리는 커다란 감자처럼 생겨 국내에서는 '돼지감자'라고도 불린다.

밀가루 감자 등에서 추출된 녹말 보다 찰기 뛰어나

최근 국내 식품업계에서 타피오카의 쓰임새가 점점 넓어지는 추세다. 일반적으로 감자나 고구마처럼 땅속 부위를 먹는 농작물에서 나오는 녹말이 밀이나 옥수수 녹말보다 찰기가 더 많다. 타피오카는 그 중에서도 특히 찰기가 뛰어나다.

타피오카는 밀가루에서 얻는 일반적인 녹말보다 더 빨리 호화(糊化)되는 장점도 있다. 물을 넣었을 때 살짝 부풀면서 점성이 증가하고 부드러운 형태로 잘 변한다는 말이다. 호화가 빠를수록 조리하기도 쉽고 먹었을 때 소화도 잘 된다.

깨찰빵이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자 일본 브랜드 미스터도넛은 밀가루와 함께 타피오카를 넣어 반죽한 도넛 '폰데링'을 2004년 개발해 한국에 선보였다. 작고 둥근 반죽을 팔찌처럼 이어 붙여 벌꿀을 바른 이 도넛은 지금까지도 국내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후 국내 도넛 브랜드 링팡도너츠도 타피오카를 넣어 쫀득쫀득한 '츄잉마블'을 내놓았다.

라면에도 요즘은 타피오카가 들어간다. 한국야쿠르트가 2005년 출시한 '장라면'이 좋은 예. 된장과 표고버섯을 첨가해 구수하고 깔끔한 국물을 내고 타피오카를 넣어 잘 끊어지지 않고 탱탱한 면발을 만들었다. 골목길 브랜드로 잘 알려진 '틈새라면'의 면발에도 역시 타피오카가 숨어 있다.

갓 추출한 타피오카는 촉촉한 가루 형태. 마르기 전에 주머니에 넣고 살살 흔들어주면 뭉쳐 지름 3∼5mm의 작은 알갱이가 된다. 이를 뜨거운 철판 위에 놓고 섞다 보면 표면이 반투명한 진주처럼 변한다. 여기에 식용색소를 입혀 만든 '타피오카 펄'도 요즘 아이스크림이나 요거트 푸딩 같은 디저트 식품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토핑으로 얹어 먹으면 말랑말랑 쫄깃쫄깃한 씹는 맛 덕분에 크림이나 우유 특유의 느끼함이 싹 가신다.

"전통 떡에도 타피오카 첨가, 올대중화 계획"


■깨찰빵 국내 소개 유태균 대표

타피오카로 만든 깨찰빵과 호떡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인물은 유태균 한국마쯔다니 대표이사. 한국마쯔다니는 일본 가공녹말 생산업체 마쯔다니화학공업의 한국 현지법인이다.

유 대표는 1990년부터 마쯔다니에 몸담아온 녹말 가공 전문가. 일본 현지에서 처음 접한 타피오카가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을 거라는 그의 예상은 대체로 적중한 셈이다.

"차지고 쫄깃한 맛을 좋아하는 건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시아 사람들도 비슷해요.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의 백인들은 별로 선호하지 않죠. 입에 달라붙는 느낌에 오히려 거부감을 갖기도 하니까요."

유 대표는 태국에서 타피오카를 들여와 국내 여러 식품회사에 공급하고 있다. 해마다 공급량은 눈에 띠게 늘어난다. 베이커리 하나 없는 동네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포화상태였던 제빵시장과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어 보였던 분식시장에서 '쫄깃함'이라는 틈새시장을 찾아낸 것이다. 유 대표는 올해 타피오카를 이용해 한국 전통식품인 떡을 한층 진화시켜 제품으로 출시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떡보다 외국에서 들어온 빵이 더 보편화했다는 게 안타까워요. 떡은 주로 쌀가루로 만들잖아요. 쌀가루 녹말의 가장 큰 약점이 금방 굳는다(노화)는 거에요. 타피오카가 이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죠."

타피오카는 쌀가루 녹말보다 노화가 더디다. 유 대표는 두 녹말을 섞어 유통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쫄깃한 식감까지 더할 계획이다. 그는 "이를 급속 냉동시켜 판매하면 집에서도 갓 만든 듯한 떡을 언제든지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