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근대국가의 모델로 삶고자 했던 독일의 근대사를 살펴보자.
1815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석권했고 패권을 수립한 뒤 나폴레옹이죽은 이후 유럽에 주인이 없어지자.
영국이 앵글로색슨(Anglosaxon)외교정책에 의해 새로운 유럽을 국제적으로 조직해 나갔다.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석권했을 때 바다건너의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유럽대륙을 봉쇄하여
영국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프랑스지배아래 있었던 유럽 국가들에게도 많은 경제적 피해를 주었다.
영국의 공산품에 의지하던 농업국 러시아가 견디다 못해 영국과 통상을 재개했고 이를 응징하려던 나폴레옹원정군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모스크바에서 퇴각하자 경제적 곤란으로 불만에 쌓여있던 유럽제국이 프랑스에 일제히 선전포고를 하자,
나폴레옹은 몰락하게 된다.
그 이후 영국의 앵글로색슨정책에 의해 게르만 민족을 크게 강화시키는 쪽으로 갔다. 이것은 영국이 유럽의 가장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게르만 민족을 통일시켜 그 힘을 갖고 러시아가 서부 쪽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으려는 동시에 프랑스의 나폴레옹 같은 침략자가 또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남부의 프랑스와 서부의 러시아를 동시에 견제하는 세력균형을 구축했다.
균형과 힘의 논리인 Balance of power 라는
국제사회를 조직하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나폴레옹이후 유럽대륙이 힘의 균형이 잘 조화된 조직으로 발전시켜나갔다.
영국의 앵글로색슨정책에 의해 유럽을 이중으로 견제할 목적으로 유럽대륙에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삼각구도를 짜놓고 국가 간에 힘의 균형을 유지시키면서 영국이 섬나라의 지리적 이점(利點)을 살려 유럽대륙을 사이에 둔 도버해협에서 패권은 물론 전 유럽 국가를 바다건너에서 통제할 수 있는 이중 장벽으로 조직한 것이다.
이것은 영국이 나폴레옹전쟁이후 앵글로색슨정책에 의해서 유럽에서의 세력균형을 구축한목적은 유럽대륙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고. 영국이 안전하게 공업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전 세계의 패권을 쥐고 제3세계에 대한 제국주의적 식민지정책으로 아메리카대륙의 미국을 시작으로
아프리카대륙은 물론 아세아의 인도를 비롯한 중국의 홍콩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식민지국가를 가장 많이 지배하여
영국깃발인 유니온 잭(Union Jack)이 지구상에서 24시간 햇빛을 본다는 뜻으로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표현되면서 19세기 세계최강의 대영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영국의 앵글로색슨정책이 있기 전까지 독일은 19세기가 되어서도 중세적인 공국과『공국(公國)은 : 왕에게 영지(領地)를 부여받은 공작(公爵) 등 귀족들이 다스리던 자치령으로 완전한 독립 국가는 아니었다. 중세유럽에서는 왕보다 낮은 작위를 가진 공작(公爵,duke), 후작, 백작 등이 다스리는 공국(公國)이 존재했다.』 백작령 등이 난립한 채로 하나의 국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수백 개의 연방으로 갈라져 있었다.
18세기말 프랑스대혁명과 나폴레옹전쟁, 그리고 계몽주의이념과 산업혁명의 영향은 독일 땅에도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다.
직접적으로 나폴레옹군대가 독일을 유린하고 그 여파로 1806년 이름만 남아있던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분열과 봉건의 굴레를 벗고, 독일어를 사용하는 게르만 민족끼리 ‘독일통일’을 이룩했다.
왕과 귀족이 아닌 국민이 주권을 갖는 국가로 나아가야한다는 생각이 지식인들과 학생들, 그리고 부르주아계급에서 힘을 얻게 된다. 영국의 앵글로색슨외교정책에 의해 수백 개의공국과 백작령으로 갈라져있던 게르만민족을 강화시켜 39개 독일연방
(Deutscher Bond)체제를, 1871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게르만 민족을 통일하여 신성로마제국멸망이후 처음
도이칠란드(Deutschland)라는 독일국가를 탄생시켰다.
비스마르크가 수상에 취임한 후 일주일 만에 “한” 연설에서 독일통일은 “민족적인 협상이 아니라 힘으로 달성해야 한다.” 는
“철과 피로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연설을 했다. 이 연설로 비스마르크는 ‘철혈재상(鐵血宰相)’이란 명성을 얻게 되었고,
철(鐵)은 무기를 뜻하고, 혈(血)은 피, 즉 목숨을 뜻하는 전쟁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로.
이것은 유럽대륙에서 독일민족이 새로운 세계전쟁을 일으키겠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포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국의 앵글로색슨정책은 게르만민족인 호랑이 새끼를 키워 유럽대륙에 또다시 세계전쟁의 참화를 불러온 결과를 초래했다.
영국의 강력한 지원으로 신생국가의 막강한 힘을 갖고 비스마르크가 1862년 재상으로 취임한지 2년 만에 덴마크(1864년),
오스트리아(1866년), 프랑스(1870)를 연달아 격파하는 사실상 유럽대륙에서 프랑스의 나폴레옹이후 새로운 세계전쟁을
일으키면서 1871년 독일통일을 달성하였다.
이와 같이 19세기말의 독일은 영국과 러시아의 패권대결이 소강상태인 때를 이용하여 통일을 성취했다.
영국의 앵글로색슨정책은 1세기동안 유럽이 산업화를 통해 안정을 이루었으나, 19세기를 거치면서 유럽은 나폴레옹전쟁 이후
독일히틀러에 의해 세계대전에 휘말리게 되었고, 2차 세계대전종전 후 소련스탈린에 의해 또다시 동유럽이 점령되어 동. 서 냉전시대를 겪으면서 일촉즉발의 전쟁의 위협 속에서 지내다.
소련붕괴이후 유럽공동체(EU)가 탄생되어 유럽대륙의 모든 나라들이 국경을 개방(開放)하고 단일국가체제를 이루어
유로화라는 단일화폐(單一貨幣)를 사용하면서 평화가 정착되었다.
출처:http://cafe.daum.net/inwham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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