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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Turkey

04. Istanbul 2002....Dolmabahce Palace, Hippodrome, Bosphorus Bridge

by lisa311 2009. 10. 6.

 

 

Middle East Travel... Istanbul

 

 

 

 마바흐체'라는 말은 '가득찬 정원'이라는 뜻.. 

 

이궁전은 해변을 흙으로 메꾸고 세운 곳이다.

 

 

 

 

 

 

 

 

 

돌마바흐체 궁 내부의  크리스탈 촛대 서있다.

 

한쪽에는 나폴레옹이 선물한 피아노가 있다.

 

 

러시아 황제로부터 받은 곰가죽이 명장들이 만든 화려한 카펫위 깔려있다.


가구와 샹들리에는 유럽에서 주문한 것으로 일부는 외국의 왕실이 보낸선물이다.

 


 

 3층의 대칭구조로 지어진 궁의 내부에는 285개의 방과 43개의 홀이 있다.

 

 

궁은 세부분으로 나뉘워, 공식 행사용공간, 국사 집행용공간,

 

 그리고, 술탄의 사생활을 위한 공간 하렘과 기타방들이다.

 

 

280개의 화병, 156개의 다양한 시계와

 

손으로  짠 대형 카페트 등이 전시되어 있다.

 


채광이 좋은 천장은  온통 금으로 장식~

 

 

 궁전에서 가장 큰 상들리에..

 

 

그리고.. 희귀한 대리석기둥이 서있다.

 

 

2층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의 크리스탈 난간


목재 기둥에 마블기법을 이용해  금과 은을 도배했으니

 

그 호화로움 이 관람객 감탄이 자아낸다

 

 

'술탄의 목욕탕'

 

 섬세하고 화려한 대리석 조각이 아름답다.

 

 

대리석을 달구어 증기를 내는 터키탕으로 세면대, 욕조 등이 

 

 모두 6곳의 목욕탕이 있다.


 

 

 

4톤과 2톤 중량의 샹들리에를 포함한 36개의 샹들리에 있고..

 

 

 황후의 집무실

 

58개의 크리스탈 촛대, 그림이 560점 전시 되어있다.

 

 

 

' 황금의 술잔'

 

오스만 제국의 번영과 서구화를 갈구했던 술탄들..

 

화려한 장식들과 전시품들이 당시의 풍요로운 생활을 볼수있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차잔이...

 

 

압두메짓 1세가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해 초호화판으로 이 왕궁을 건립

 

 

그랜드홀의 천장

 

중앙홀은 2,500명의 인원을 수용할수있는 세계에서 5개 안에 꼽히는 대규모 홀

 

 

둥근 돔 천정으로 보이나 실은 입체감을 살려 그린 평면이다. 

 

 

그랜드홀의 샹드리에

 

  56개의 둥근 원기둥과 영국 빅토리아 여왕한테 받은 750개의 캔들이 달린

 

무게 4.5톤의 거대한 크리스탈 상드리는 이곳의 자랑거리

 

 

전체 전등은 엄청난 전기소모에 국가행사때나 외국원수가 방문할때나 켠단다.

 

바닥에 깔린 카펫은 프랑스에서 온것.

 

동서양이 만나는 이스탄불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만났다'라는 의미를 가진단다고...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침실 1938년에 이궁에서 눈을 감았다.

 아직도 그가 서거한 시각 9시 5분에 시계가 멈춰있다.

 

 

 

' 장미꽃같은 샹들리에'

 

천장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프레스코아~ 

 

 

 돌마바흐체궁은 여러공간들이 한지붕으로 궁의 전체 내부는

 

 프랑스 오페라건물을 디자인한 '세찬'이 장식했으며

 

 벽화는 러시아의 화가 아이바조 브스키 작품이다.

 

그리고 몇몇 유럽의 화가들,그림과 벽화 프레스코등 참여했다.

 

 

역대 술탄 의 사진 

 

 

술탄1세에 의해 세워진 이 궁에 생활은 5년 ..그후 생을 마감하고..

 

그후 20년간 6명의 술탄들이 이궁을 거쳐갔으며

 

마지막 왕자가 13세이던 어느날, 자전거를 타러 나가려는 왕자에게

 

두명의 대신이 와서 눈물을 흘리며 '이 종이에 서명을 하십시요'라고 했다.

 

 


빨리 자전거를 타러 나가고 싶었던 왕자는 내용도 확인하지 않는채 서명을 했는데,

 

그 내용은 술탄의 가족들이 24시간 이내로 터키를 떠나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날이 오스만의 통치가 막을 내리는 날이었다.

 

 터키정부는 술탄의 가족들에게 남자는 50년간,

 

여자는 25년간 터키로 돌아올 수 없다는 금족령을 내렸다고 한다.

 

 

술탄의 가족은 우선 프랑스로 떠나. 그곳에서 어느정도 성장한 왕자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겠다고 결심하고 홀로 브라질로 갔고,

 

 그곳에서 항구의 하역장에서 막부로 일하는 등 힘겨운 생활을 하였다고...

 
 
서른즈음에 왕자는 터키와 가까운 이집트로 와서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왕자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집트 왕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집트 왕자들은 비웃으며 '우리가 돈을 줄테니 택시운전이라도 하라'고
 
. 그러자 오스만의 왕자는 '돈을 그냥 주지 말고 내게 돈을 빌려달라.
 
그러면 택시운전을 하여 번돈으로 꼭 갚겠다'고 했단다.
 
이리하여 왕자는 이집트에서 택시운전기사로 일하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집트의 신문에 오스만의 마지막 왕자가
 
 이집트에서 택시기사로 살아간다는 기사가 실리게 되어,
 
 
왕자는 이집트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고 프랑스의 니스로 왔다.
 
니스에서 왕자는 묘지의 묘지관리인으로 살았다.
 
 자식에게 자신의 운명을 물려주기 싫어서 왕자는 결혼도 하지 않은채
 
혼자의 몸으로 팔십 노인이 될때까지 거기에 살았다.
 
그의 유일한 낙은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터키커피를 마시며,
 
 가게 점원에게 부탁하여 터키음악을 듣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터키정부에서 왕자를 초청하여
 
 터키에 일주일간 방문할 기회를 주었는다는데,
 
팔십의 노인이 된 왕자가 어릴적 뛰어놀던
 
 돌마바흐체궁이 보이는 곳에 서서 참았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더란다.
 
이 장면이 방송을 통해 터키인들에게 전해지자
 
방송국과 정부의 주요 기관에 마지막 왕자가
 
 터키에서 남은 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전화가 빗발쳤고,
 
터키정부는 여론을 수용하여 왕자가 터키에서 살 수 있도록 허가했다.
 
 
 
왕자를 취재하던 기자가 이러한 상황을 왕자에게 알려주자
 
왕자는 '언젠가는 터키에 꼭 한번 와보고 싶다는 소망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소.
 
이제 터키에 왔으니 그 소망을 이루었소.
 
그러나 터키를 위해 세금 한푼도 낸 적 없는 내가 터키에 살 수는 없소.'하며
 
정해진 일주일간의 방문기간이 끝나자
 
프랑스의 니스로 되돌아 갔다고... 그로부터 일년후,
 
왕자가 매일 드르던 카페의 점원이 왕자가 일주일째 카페에 드르지 않자,
 
이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왕자가 혼자 살았던 묘지 한구석의 작은 집에 가보니,
 
왕자는 두손을 마주잡아 가슴에 올려 놓은채 평온한 표정으로 죽어 있었다고 ...

 

 

'금으로 도배한 벽'

 

돌궁이 1856년 완공되었는데  쓴 50만 금화, 


궁의 내부 장식과 방들을 꾸미기 위해 어마어마 한


총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돌궁 공사기간 1843년~1856년까지 총13년에  완공

 

 1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보존 상태가 좋다.

 

 

 그러나.. 결국 막대한 건축비 지출은 어려웠던 왕실 재정을 더욱 악화시켜

 

 오스만 제국의 멸망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원의 분수

 

 

 

궁에 처음 들어서면 아름다운 프랑스식 정원을 처음 마주치게 되며

 

웅장한 프랑스식 정문을 통과하면 궁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단군의 신화처럼 .. 사자의터키역사 이야기가있다.

 

1908년 혁명으로 압둘 하미드 2세의 폐위 이후에도 메메드 5세를
 
황제로 옹립하여 제국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피지배 민족의 독립과 1차 대전 패전 결과
 
이전의 광활한 영토를 대부분 잃게 되었다고 한다.
 
 
조약에 의해  오랫동안 터키의 속국이었던 그리이스에게
 
  에게해와 주변 해역을 모두 빼앗기고
 
육지도 지금의 영토로 고정되었으니
 
이전의 위상은 옛 이야기가 되었고
 
메메드 6세를 마지막으로 오스만 제국의 왕정이 폐지되고,
 
황제가 겸하던 칼리프 직을 이어받은 압둘 메지드 2세도
 
칼리프제의 폐지에 따라 터키를 떠나야만 했으니
 
돌마바흐체는 술탄과 그 가족들에겐 한이 맺힌 장소가 되었다.

 

 

궁전 입구의 시계탑

 

 

압둘하미드 2세에의해 새워진 사르키스 발얀 작품

 

 

 

  돌마바흐체 정문'  

 

개인적으로 궁 내부 관람은 불가능하고, 가이드가 영어 , 터키어로 안내한다.

 

 Dolmabahce' 카바타쉬역에서 내려 해변길따라 올라가면 있다.

  

 

 

 5m에 달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돌마바흐체 궁전의 전체면적은

 

 약 21만평 정도로.. 이 크기는 바티칸시국의 두배이며

 

 

모나코의 절반 크기 정도 되는 상당한 규모의 궁전이다.

 

 

포스포러스 해협' 돌마바흐체궁'

 

 

 포스포러스 해협 ' 오르타쾨이' 사원
 

 

 

' 포스포러스 제2교'

 

 

포스포러스 해협  '루멜리히사르'성

 

 

 

 

 

 

술탄아흐메트 사원앞 광장 의 'Hippodrome' 히포드럼'

 

 

 

'Dikilitas' 디킬리타스라고 불리는 이집트 오벨리스크

 

연한 핑크색 화강석의 오벨리스크는

 

 무게가 약 300톤, 높이는 20m , 4면에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아래 대리석 받침대 4면에, 오벨리스크를 세우는 것을 지켜보는 황제의 모습,

 

전차 경기 후 무희들이 춤추는 모습, 전차 경기 모습,

 

외국의 사신들로부터 공물을 받는 황제의 모습 등

 

 당시 왕족들의 일상을 양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본래 이곳은 10만명 정도 수용하는 검투 경기장이였고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수많은 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콘스탄티누스 오벨리스크.
 
원래 청동판으로 덮여 있었는데, 십자군 전쟁때
 
청동판을 떼어 동전 만드는데 써 버렸다고
 
 
 
청동뱀 기둥
 
BC479년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에 대항해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움.
 

 

 

하이포럼광장에 있는 '빌햄름분수' 독일분수

 

 이곳에 있는 기념물중 가장 마자막에 세워진 것이다.

 

 

 
금빛의 분수지붕

 

이스탄불에 방문한 독일의 황제'카이세르 빌헬름' 은

자신에게 보내준 환대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에 대한 답례로 이분수를 만들어 주었다고

1898년완성되어 기차로 이스탄불로 옮겨졌다.

 

 

 

흉상은 ?

 

이곳은  "U"자 형태의 큰 경기장으로 

 

 여가 및 오락,귀족들의 사회 모임, 결혼식, 시장 등이 열리던 곳이다.


 

 

히포드럼 광장주변은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즐비하다.

 


 

 

명동과 같은 명품의 '탁심거리.. 볼거리, 먹을걸이 많은 젊은이 거리다.

 

 

이스탄불에는 무궁무진한 볼거리들이 가득하다. 

 

 

 

한 때 중심역 역할을 담당했던 Sirkeci 역 외관모습.

 

 

 

8000km떨어진 한국과 터키~ 언어 유사성들 수 있는데

 터키어 와 우리말은 같은 우알타이어족에 속하여

 

 문장구성,문법, 모음조화등이 우리말과 거의 비슷 ~

 

우리말과 어순도  같이 S+O+V 의 순이다.

우리 고유 가림토문자가 터키로 건너갔다고 한다. 

 

 

 

 

...........  Le Dernier Train De Les Pase - The Spotni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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