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rea Culture/history

검찰이 '법원 판결' 무시하면서까지 숨기는 것은?

by lisa311 2023. 7. 1.

-뉴스타파<donate@newstapa.org>

 

A4용지 수백 장 분량의 자료가 들어 있는 파란색 박스. 굳은 표정의 사람들이 이런 박스 십여 개를 들고 건물 앞을 오가고 있습니다. 건물 앞에는 기자들이 모여서 이 장면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광경,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요? 

맞습니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할 때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죠.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뭔가 좀 이상합니다. 

장소는 대검찰청인데, 박스를 들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나오고 있네요. 

그리고 박스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검사가 아니라 기자와 시민단체 활동가들입니다. 

지난 23일,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검찰의 예산 정보가 사상 최초로 공개된 날의 광경이었습니다. 

 

▲ 지난 6월 23일, 뉴스타파 취재진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검찰 예산 자료를 들고 나오는 모습. 

 

검찰 예산 자료 16,735쪽 ‘사상 최초’ 공개됐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이 광경을 보고 언론에서는 이런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진짜로 압수수색을 당한 건 아니고, 대법원 판결에 따라 공개된 자료를 들고 나온 것이었어요. 

검찰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입니다.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죠. 

그런데 지금까지 검찰은 ‘수사 기밀’이라는 이유로 많은 정보를 숨겨 왔습니다.

 예산 사용 정보가 밝혀지면 범죄 수사에 큰 지장을 줄 수도 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었어요. 

이런 검찰의 주장이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검찰이 수사와 별 관련이 없는 내용까지 꼭꼭 숨겨놓는데다, 

아무런 감시도 받지 않은 채 큰 돈을 쓰다 보니 예산 오남용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대표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이런 현실을 해결하고자, 뉴스타파와 시민단체 3곳(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시민행동, 정보공개센터)은 

검찰을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했어요. 

그리고 약 3년 반에 걸친 소송 끝에 대법원은 검찰의 예산 정보를 공개하라는 확정판결을 내렸습니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들이 검찰을 상대로 최종 승소 판정을 받은 것이죠. 

그리고 지난 23일, 검찰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총 16,735장 분량의 예산 자료를 공개했어요. 

처음에 보여드렸던 파란색 박스에는 바로 이 자료들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들은 자료를 입수한 날부터 즉시 모든 문서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자료에 이상한 점이 없는지 검증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런데 취재진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자료를 살펴본지 얼마 되지 않아 황당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당수의 자료가 부실 자료인데다, 일부 자료는 아예 통째로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에요.

 

2017년 검찰 ‘돈봉투 만찬’ 사건… 해당 기간 자료 통째로 사라졌다 

검찰이 내놓은 자료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검찰의 대표적인 예산 오남용 사건을 하나 짚고 갈게요. 

2017년 4월 일어났던 이른바 ‘돈봉투 만찬 사건’이 그것입니다. 

이 사건은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사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현금 70~100만 원씩 ‘돈봉투’를 돌렸다가 발각된 사건이에요. 문제는 이 돈의 출처가 바로 검찰 특수활동비(특활비)였다는 점입니다. 

 

원래 수사 등 기밀 업무에만 사용해야 되는 특활비를 사실상 검사들의 ‘용돈’처럼 쓴 셈이죠. 

이 사건 이후로 검찰은 자체 감찰에 들어갔고, 이영렬 지검장은 면직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후 검찰은 앞으로 특활비를 투명하게 운영하겠다고 약속했고요. 

 

▲ 2017년 ‘돈봉투 만찬 사건’의 당사자인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이번 대법원 판결로 검찰이 공개한 자료는 2017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총 2년 9월치에 해당합니다. 

이 중 돈봉투 사건이 일어난 2017년 4월 전후 자료를 살펴보면, 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고 그 이후 검찰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겠죠. 

 

그런데 막상 자료를 살펴보니, ‘돈봉투 만찬’사건을 전후해 약 4달간의 특활비 자료가 통째로 사라진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자료가 사라진 기간은 2017년 1월부터 5월까지. 해당 기간 대검찰청의 특활비 자료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어요. 

해당 기간 대검찰청에서 집행된 특활비는 총 74억 원 규모로 추산됩니다. 

즉 74억 원의 돈이 어딘가에 쓰이긴 했는데, 그 행방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사라진 거예요. 

더군다나 특활비로 ‘돈봉투’를 뿌린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 시점에 말이에요.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아주 수상한 정황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해당 기간 자료를 무단으로 폐기했다면, 공공기록물법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됩니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들은 검찰에 해당 기간 자료가 왜 사라졌는지 물어봤지만, 검찰 측은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어요. 

 

윤석열 서울지검장 시절 특활비 자료도 ‘무더기 증발’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돈봉투 사건’ 이후 이영렬 당시 서울지검장은 면직 처분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한 인물이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었어요. 그럼 과연 윤 대통령은 서울지검장 시절, 특활비를 제대로 운영했을까요? 

 

윤 대통령이 서울지검장으로 재직한 시기는 2017년 5월 말부터 2019년 7월 말까지입니다. 

그런데 대검찰청의 특활비 자료가 사라진것처럼, 2017년 5월까지 서울중앙지검 특활비 자료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다만 2017년 6월부터 7월까지는 윤 대통령이 약 5천만 원의 특활비를 지급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문제는 이 기간 지급된 특활비 4,460만 원의 수령증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수령증은 특활비를 받아간 사람이 반드시 남겨야 되는 기록인데, 이 기록이 없으면 수천만 원에 달하는 특활비를 누가 어떻게 썼는지 알 길이 없어집니다. 확인 결과, 당시 서울중앙지검이 수령증을 폐기했다는 공식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즉 부실 관리로 인해 자료가 소실됐거나 누군가가 무단 폐기한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정황이에요. 

물론 어느 쪽이든 당시 검찰이 특활비 관리를 엉망으로 했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17년 돈봉투 사건 이후 검찰은 특활비를 투명하게 운영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습니다. 

그 직후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지검장 자리에 임명됐지만, 

‘윤석열 지검장’ 시절에도 특활비 관리 실태는 크게 변한 것 같지 않아 보여요. 

 

특활비 290억 원 전액 현금 지급... 누가 어디에 썼나? 

검찰 예산 검증에 필요한 수많은 자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황. 그렇다면 남아있는 나머지 자료는 어떤 상태였을까요? 나머지 자료를 통해 확인한 결과, 2017년 5월부터 2019년 9월까지 2년 5개월간 검찰이 쓴 특활비 총액은 약 290억 원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이 돈은 전액 현금으로 집행된 것으로 드러났어요. 

한 달에 약 10억 원에 달하는 현금이 검사들의 손에 쥐어졌던 셈입니다. 

그런데 검찰이 공개한 자료를 살펴보면, 이 특활비가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추적할 수 있는 정보가 전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특활비 수령인, 지급 사유와 목적 등 항목에 까맣게 먹칠이 되어 있거나 아예 공백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에요. 

 

▲ 검찰이 공개한 특활비 예산 자료 일부. ‘수령인’, ‘지급 사유’와 ‘목적’ 등의 정보가 전부 지워져 있습니다. 

 

특활비는 말 그대로 특수한 활동, 즉 기밀이 요구되는 수사나 첩보 활동에 사용하기 위해 책정되는 예산입니다. 

그런데 이 예산이 한 달에 약 10억 원씩, 한 번에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현금으로 지출됐습니다. 

이 돈이 정말로 수사·첩보 활동에 지출됐는지, 아니면 이영렬 지검장 당시처럼 ‘돈봉투’에 담겨 어디론가 흘러갔는지, 

검찰이 내놓은 자료만으로는 검증이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이번에 공개된 검찰 예산 자료 중에는 특활비 뿐만 아니라 

업무추진비 자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업무추진비 자료 역시 특활비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정보를 가린 채 공개했어요. 

업무추진비는 사용 시간과 사용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데, 

검찰이 공개한 업무추진비 자료에는 유독 사용 시간과 장소가 지워져 있었습니다. 

 

▲ 검찰이 공개한 업무추진비 영수증에서 결제 시간이 지워져 있습니다.

 

 

법원 판결 무시하는 검찰… 대통령은 ‘민간단체 때리기’만 열중?

2019년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한 이후, 검찰은 한결같이 ‘수사 기밀’을 이유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모두 기각하고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어요.

예산 정보를 공개한다고 해도 딱히 수사 활동에 지장을 받는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불성실한 자료 제출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수백억 원대 현금을 집행하면서도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는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고,

심지어 특정 기간의 자료는 아예 통째로 사라지기까지 했어요. 검찰이 법원의 판결을 정면으로 무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정부 보조금을 받는 민간단체나 노동조합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습니다.

민간단체의 투명한 회계를 강조하며 예산 사용 내역을 숨김없이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 민간단체 보조금 비리 실태를 비판하는 윤석열 대통령. 

 

그러나 정작 윤 대통령이 수장으로 있었던, 검찰의 예산 정보는 불투명하기 그지없습니다. 

수백억 대의 국민 세금을 쓰고 있지만 정작 국민들은 검찰이 어디에 얼마를 쓰는지 잘 알지 못하죠. 

심지어 법원이 정보 공개 판결을 내렸는데도 수많은 ‘부실 자료’를 내놓고 있는 것이 현재 검찰의 모습입니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들은 수많은 부실 자료 속에서 조그마한 단서들을 찾아내, 

지금까지 검찰이 어떻게 국민 세금을 집행해 왔는지 검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검증 작업이 진행되는 대로 그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