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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Culture/Picture

명성황후 생가터 사진

by lisa311 2016. 1. 5.

http://cafe.daum.net/alldogo/LQeK/399?q=%C0%CF%BA%BB%C0%CE%20%BF%B5%B8%F1%BE%C6%C0%CE&re=1

 

대한제국의 황후는 당당했습니다.

죽음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이 나라의 진정한 국모였습니다.

지금도 일본은 그 때의 야망을 버리지 못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온갖 권모술수를 쓰고 있습니다.

 

 

 

 

 

 

 

 

 

명성황후 전시관을 비롯해 어렸을 적 8세까지 지냈던 생가터는 물론이고 민속마을과 감고당은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또한 주변의 환경 또한 아주 잘 꾸며놨습니다.

 

 

 

 

 

 

 

연못 가운데 있는 항아리에 동전을 던져서 동전이 들어가면  음악이 나오며 행운과 소원이 이루어진다 합니다.

 

 

 

식수대.....토끼와 거북이가 사이좋게 이쁘게 꾸며 놨습니다.

 

 

 

 

 

 

명성황후와 고종황제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

 

 

 

 

명성황후 궁중유물

 

 

명성황후의 친필

얼마나 힘이 있고 반듯한 필체인지..양반집 규수로 자라고 별당에서 많은 배움이 있었을테니...

 

 

 

어느 문장가 못지 않은 필체를 보여주네요.

일편단충...일편단심으로 나라에 충성한다는 말이겠지요

 

그 때만 해도 효도 중요시여겼지만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더 우선적이었지요

더구나 한나라의 국모인데...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필체에 나라를 사랑하는 힘이 느껴집니다.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주변국가로부터 조선국은 자주국임을 선포하며,

힘이 없는 나라를 지키려는 고종의 가례식입니다.

 

 

 

고종의 가례식

정말 어마어마한 결혼식을 치루었네요.

 

 

 

궁녀가 대필했다는데..궁녀의 필체도 대단합니다.

 

 

 

 

국장모습이다.

국장에 동원된 인원이 4000여명 된다니 얼마나 장대한 장례식을 치뤘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일본 낭인에게 시해당할 당시의 그림

방송으로 본 바에 의하면 명성황후는 일본 낭인들이 들어왔을 때, 절대 피하지 않고 황후의 존재를 알리는 대례복을 입고

일본인에게 큰소리를 쳤다햇는데....

그 밑에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시해도(칼)이다

 

일본 낭인이 명성황후를 시해후 시체을 못찾도록  돌을 감아 연못에 버려져 오랬동안 찾지 못하여

우연 곡절로 찾아 오랜시간이 흐른후 장례식이 치루워 졌다.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을 그저 이나라의 국모가 시해되었던 사건으로만 기억할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작가 김진명의 진실을 파헤친 그의 말에 의하면...실로 여기에 밝힐 수 없는 아픈 사연이 있음을 아시는지요?

(황후 옷을 벗기고 온갖 치욕을 치루고 시해당했다고 일본역사에 기록되어 있다고 함)

 

그 사실을 듣는 순간 온몸의 피가 쏫구치는 듯 했습니다.

어찌 한나라의 국모를 그렇게까지 ...정말 가슴이 찟어지도록 아픈 사연입니다.

분노가 치밀어올라 입에서 욕이 나옵니다.

 

 

 

 

" 이이제이" 론..외세의 침략은 외세의 힘으로 견제한다는 계락을 써서 일본과 러시아와 서로 견제케 했다는...

 

 

 

 

여흥민씨인 명성황후 가의 족보이다.

여흥민씨가 명문가임을 알 수 있는 사료이다

 

 

 

이 글을 소리내어 한 번 읽어봤다.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그 누구가 어찌 이 사실을 두고 통분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힘이 없는 나라의 설음으로 가슴을 치고 아픔을 삼킬 수 밖에 없었던  당신의 상황을 가늠하면서 잠깐의 묵념을 올린다.

명성황후가 8세까지 살았던 집이다.

비록 당시의 집은 안채뿐이었던 것을 1995년에 고증에 의하여 복원하였다한다.

영주군수를 지낸 민치록의 딸로 태어났다한다.

복원된 가옥은 제법 크모도 있고, 별당도 있을 정도로 적지 않은 규모라 생각되었는데 설명서에는 아담한 규모라한다

하기는 일반 양반가 부자들은 수십칸의 집을 보유하고 살았던 예가 많은데...

 

 

명성황후 생가

 

 

 

 

 

 

 

 

옛날 다락방.... 

 

 

 

방에 가구들이 별로 안보인다.

본래 간소하게 살았었는지 전란에 소실된는지...

양반가집치곤  너무 단촐해 쓸쓸하다.

 

 

 

명성황후 초상화

 

 

뒷쪽에 보이는 것이 별당이다.

 

 

 

명성황후의 어린 시절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별당채에서...

 

 

 

 

1995년 이 생가를 복원할 당신 갖가지 나무를 심었을까....

작약과 대추나무와 무궁화나무, 그리고 모과와 앵두나무까지 ...무궁화가 엄청 크다.

 

 

 

목련이 벌써 몽오리를 많이 키웠다.  커다란 꽃봉우리를 볼 수 있을 듯....

 

 

 

  

탄강구리비...여기서 배운다.

명성황후의 아들인 순종황제의 친필로 써 놓은 탄강구리비...정말 대단한 필체다.

 

 

 

 

 

 

 

명성황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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