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rea Culture/history

2차 전쟁시 일본의 만행한 사진 모음

by lisa311 2014. 2. 17.

 

 

 

 

우리의 선열들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독립군가를 부르면서

일본군의 잔학하고 악랄하고 무자비한 총칼에 순직 하였다.


일본은 1880년경 부터 우리나라에 불법으로 일본군을 주둔시켜 각가지 만행을 자행한 후

결국은 나라를 송두리째 빼았아 침략하더니

그래도 모자라 다시 독도를 자기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강점 36년 동안에 자행한 일본의 만행을 들추어 전 세계에 고발을...


끔찍한 사진이 많으니 주의 필요!




광복 독립군과 독립투사, 양민들이 잔학한 일본군에 붙잡혀 온 집결장이다.
일본인에 체포 되어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해 대기 하고 있다.
손을 뒤로 묶인채 소리 없이 침묵하고 있다.
1928년 이때부터 일본군은 악랄하고 잔혹한 살육의 강도를 높인다.




독립투사 또는 양민을 학살 하기 위하여 일본도를 손질하는 일본군인들.



일본군 놈들에 끌려 가는 독립군 의병장



독립군, 독립투사를 처형장소로 가기 위해 트럭에 싣고 있다.



장칼에 목이 떨어지는 우리나라 독립군들
군중의 공포감을 떨게 만드는 잔악한 행위을 하는 일본군



한국 독립군 의병대 모습

조국의 독립을 위해일본군놈들을 해치워야 겠다는 의기 투철한 한국의병대들



총검으로 처형하기 위해 담장 쪽으로 몰고가고 있다.
여러명의 총검에는 선혈이 묻어 있다




체포된 독립군을 칼로 목을 칠 때 넘어 가지 않도록 팔을묶고 뒤에서 당기고 있다.
일본인 칼에 목이 떨어지는 순간을 촬영한 것이다.




개를 풀어 인간 사냥을 하는 모습이다. 결국 총살로 생을 마친다.



독립군 간부의 처형 장면

목을 치기전 뒷편 일본군이 웃는 모습을 볼때 분노보다 일본의 양심과 목적을 혼돈하게 한다.



독립군 병사의 짤린 머리들을 공중 높이 매달아 놓았다.
경각심을 주기위해 오랫동안 머리를 매달아 휴먼이 할수 없는 최악의 형벌을 자행 했었다.



온 마을이 유해로 가득한 죽은시신을 가족들이 구분하지 못하도록 화장을 시켰다.



손을 뒤로 묶고 물에 수장하는 처형.
처형이라기 보다 학살이라고 하는게 맞을것 같다.



떨어진 목을 손에 쥐고 미소짖는 일본군인

사람 목숨을 장난삼아 학살하는듯 일본 토벌군인 들은 사정없이 민간인 까지 살해 했다.



포로가 된 민간인 과 독립군을 사정없이 목을 잘라서 담장 밑에 상품처럼 진열하여 두고
독립군 용사들은 죽어서도 한결같이 한을 품고 눈을 감고 있다.



생매장 되어지고 있는 양민들
숨이 끊어질때 까지 대한독립을 원했다.

일본놈들의 잔혹함을 엿볼수 있다.



세균 생체 실험을 하고 있는 장면
마취도 없이 손을 묶고 복부에 창자와 내용물이 나오고 일본군 의사가 해부하고 있다.
신기하듯 일반 일본인들은 입 마스크하며 지켜 보고 있다.



일본군이 목에 칼이 목을 치기전 잘린 몸통에서 품어 나오는 피를 막기 위해 수건을 얹어 놓은 것.



손을 뒤로 묶고 칼로 살육하는 장면.



지독한 고문.
하의가 벗겨지고 성기을 절단하는 혹독한 고문뒤 결국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혹독한 노역을 시키고 난뒤 결국 집단 처형 되었다.



총검으로 성기을 희롱며 처형당하는 모습이다.
변태적인 미소을 띄우는 일본군인



포로을 두고 총검으로 심장을 찌르는 연습장면. .



목을 자를려고 고개를 세우고 있는 긴 일본장도



많은 양민앞에서 잔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처형하는 순간



칼이 지나가 목이잘린상태.



독립군의 목은 이미 칼이 지나가 목이 떨어지는 순간.



처형후 두병사의 자랑스런 자세로 기념찰영.



양민들 이 손이 뒤로 묶여져 죽음을 기다리는 일본인 감시아래 있다.



생매장된 양민들

가족들에 의해 파헤쳐지고 있는 장면이다.
죽은사람의 표정에서 일본인의 잔혹한 흔적을 엿볼수 있다.



처형을 대기하고 어린 독립소년투사

긴장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



대량 학살 하고난 뒤 처참한 잔악 무도한 일본군들.

산밑에 즐비한 애국지사의 시신들 중에 가족들이 시신을 찾기 위해 애을 쓰고 있다

그 시대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과 아낙네들이 살펴 보고 있다




목은 짤라져 얼굴이 등뒤로 돌려 져있는 잔혹한 살육 장면(1942)
옷이 벗겨진 여인은 강간하고 온몸이 상처 투성이다.



강간후 총으로 치부에 발포한 장면

엉덩이에도 총상구멍이 선명하게 보인다

여성의 음부를 일본군이 가려 좔영 하였다.더 이상 해설이 필요 없는 사진이다.



한국 여인들을 찾으러 다니는 일본군들

눈에 띄는 여성은 모두 끌고가 강간후 살해했다.

이런 여성보급을 당담하는 일본군은 항상 여러명의 한국여성을 데리고 다녔다.



수장된 시신들

살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 에게는 긴막대기로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손을 뒤로 묶고 저수지에 수장시켰다.



한곳으로 몰아 넣어 집단으로 무차별 학살 한후 불 태웠다.



(1937년) 학살당한 어린 자식 시신을 물건 처럼 들고 가는 아버지의 허탈한 심정..



여성의 옷을 벗기고 마구 강간후 살육당 했던 참혹한 현장.
일본군이 1943년 후퇴하면서 최후 발악을 자행한 흔적들이다.



(1938년)죽이는 방법 시범 실습 현장 장면

강변에서 총검으로 살육하는 실습을 자행하고 이런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동원된 일본군인들은 관심 깊게 보고 있다.



두사람의 양민이 포로가 되어
일본인에게 두손 모아 애원하는 모습이 보이고 일본군은 무엇인가 소리 치고 있다.



산더미 같은 시체중 여성의 하의가 벗겨져 있고 성기에 선혈이 흘러 나오고 있다.



집단 학살. 가슴에는 죄명아닌 죄명을 달아놓고 사살했다.



일본군은 여성의 음부를 손가락으로 장난하고 있다.
전쟁과 관계 없는 일이다. 일본의 숨은 근성을 엿볼 수가 있다.



부녀자 강간

일본 병사 손을잡고 애원하는 모습입니다.
이미 젖가슴이 드러나고 반항을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수난이다.



손을 뒤로 묶고 못에 수장을 시켰다.
막대기는 위에서 누르고 있다. 살기 위해 얼마나 바둥 거렸는지 짐작이 간다.



인형처럼 뒹굴고 있는 갓난 아기의 시체
일본 놈들은 전쟁으로 이성을 상실 했었다.



잡아온 양민들을 표적 삼아 사격 연습을 하고 있다. 너무나도 억울한 죽음!



부녀자 집단사살.

엄마와 함께 도피 하다가 참변을 당하여 선혈이 계단을 적시고 있다.



집단 사살 현장에서 오른쪽 사진 일본군이 죽은 시체를 확인하고 있다.



여성이 입을 벌리고있는 부녀자 절규!

일본군인들의 강압에 하체를 의해 성기 보이는 (차마 설명 할수 없음)
손가락에 결혼의미하는 실반지가 보인것으로 유부녀.

단란했던 가정을 등지고 결국 정신대로 끌려 갈것이다.




작두로 처형 직전. 작두로 목이 곧 짤러 질것이다.



작두로 목을 짜르고 있다. 작두 앞에 잘려진 목이 하나 보인다.



목이 잘린 시체의 손을 자신의 잘린 목부분을 가르키게 일본군이 장난 삼아 해놨다.
작두로 수없이 잘려간 양민들의 모습 저런 끔직한 일은 일본군에겐 단지 장난에 불과했다.



일본 관동대학살 (1923년)
1923년 일본 관동일원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10여만명이 사망 했다
민심이 극에 달하자 일본 정부는 한국인 폭동설을 조작 유포시켜 한국교포 약 5천명을 피살 하였다.

(몽둥이,죽창 으로 생으로 학살하는 장면)



창고 독살. 엄청난 시체가 당시 혹독한 진실을 보여 주고 있다.



노역자가 운송을 마치면 죽음 이다.
부릴때로 부리고 쓸모가 없어지면 장소와 때를 불문하고 이렇게
죽였다.



3명의 의병 총살 현장

서대문 형무소뒤 야산 공동묘지에서 독립 의병 3사람이 총살 당하는 모습이다

영국여행가 비숍 씨가 촬영 영국왕립 박물관에 소장된 자료.



어린아이들 까지 죽여 불태워 졌다.
온갖 수단으로 자행한 행위는 사진속에는 피할수가 없다.




독립 투쟁을 벌이다가 집단학살된 해골이 쌓여 있다.
잔혹한 행위로 소리없이 죽은 영혼은 무엇으로 위로할 것인가?




선량한 양민을 단 칼에 처형하는 일본군



<죽음 앞에서도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며 당당한
독립투사.>



사람의 머리을 모아 기둥에 달아논 모습 참아 볼수 없는 사진

 

 

길거리에서 일본군인에게 강간을 당하고 맞어서 내장이 나온 상태

 

 

일본군 종궁 위안부(정신대)의 거실 내부-이곳에서 일본군은 성욕을 채웠다.

 

 

일본군 위문품을 강제로하는수 없이 만들고 있는 근심이 가득한 한국여성

이곳에서 강제 노동을 하면서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 갔다.



종군 위안부 처소에 들어 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일본 병사들.



음부를 노출하게 하여 찍은 사진.
위안부여성이 의자에 다리을 묶여있다.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는 막사로 이동하는 위안부.



위안부의 휴식시간.

오른쪽 임신한 어린소녀모습



일본 전쟁중 산속에도 불려간 종군 위안부 여성

 

 

 

=====사진 출처: 다음카페

 

 

 

참혹했던 역사의  잊어지고 있는 현실을 각성하기엔 위에 사진들이 너무나도 잔인하다.

 

과거나 지금도 침략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일본정치!

 

독도를 다게시마로 국제적으로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아베의 침략정치는 어디까지 가나? 

 

 

 동양평화론  안중근 의사  

 

다른나라에는 일반 전쟁군인도 시신찾아 자국에 묻히는데 

아직도 일본에 시신이 뭍쳐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계신다.  우리 현실은 슬프다!

 

 

---기사중--

일본제국주의 ‘ 이토 히로부미 저격한 안중근의사의  한중 양국, 공동 협력의 상징한국 외교부는 "한중 정상 간 논의에 따라

중국 하얼빈역에 안 의사 기념관이 개관된 것을 환영하며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본국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6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안 의사가 한중 양국민이 공히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인 만큼 하얼빈역의 의거 현장에 기념 표지석을 설치하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중국 정부가 관련 기관에 검토를 지시하였고, 한중 양국이 이후 물밑에서 협의를 진행하여 기념관을 건립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의거 현장 표지석 설치’ 요청을 받은 중국 정부가 ‘기념관 건립’이라는 더 큰 결과로 화답했다.

 

 

과거에 선조들이 열열하게 목숨을 받쳐 찾아 독립한 나라을

 

또 다시 아픈경험 없기 위한 관심을 갖고 문제에 대한 준비을 해야 할것 같다.

 

북한문제나 자국의 일어난들을 강건너 불 보듯 하고 있는 무딘 우리의 국민 분위기

 

우리의 역사을 공부을 많이 가르치지 않는 학교가 많은지?

 

자국의 문화의 뿌리가 없으면 정체성도, 발전이 없는 미래에 각성 된다.

 

일본이란 나라는?

 

경제성이고, 정치적이고, 서로 협력하며 지내기 정말 힘들게 하는 이웃나라!

 

정말~ 일본제품은 구매하고 싶지도, 일본에 여행하고 싶지도 않는 생각이 든다.

 

누가 일본인들은 남에게 피해을 주지 않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가 했는가?

 

그렇다면, 아이러니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