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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Culture/history

행방 감춘 소송 기록들..일본 외무성이 꿀꺽?

by lisa311 2022. 7. 28.


악화일로를 걷던 한일 간에 스킨십이 늘고 있습니다. 코로나까지 겹치며 끊겼던 관광이 재개 수순에 들어갔고,

한일 정상회담을 예측하는 언론 보도도 끊이지 않습니다.

양측 모두 현안이 해결돼야 한다면서도 대화는 하겠다는 적극적인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11일 한일관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 문제를 비롯한 현안 해결이 급선무"라고 말했습니다.

 

'노동자 문제'란 일본 전범기업의 한국내 자산 ‘현금화’를 앞두고 있는 강제징용 손해배상 문제를 말합니다.

일본 측이 가장 민감해 하는 문제입니다.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2021년 9월 대전지방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

김성주 할머니 측 신청에 의해 압류된 미쓰비시중공업의 상표권 2건, 특허권 2건에 대해 각각 매각 명령을 결정했습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불복해 즉시 항고했지만 기각됐고, 지난 4월 미쓰비시중공업 측의 재항고에 의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입니다. 일본 기업 국내 자산의 첫 현금화 절차가 막바지 단계에 와 있는 겁니다.

 

실제로 현금화가 되면 파장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양국 정부가 대화에 적극성을 보이는 건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현금화로 인한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강제징용 피해 자서전을 펴낸 양금덕 할머니


손해배상 소송에서 시작해 자산 매각에 이은 현금화까지, 사태가 커진 데는 일본 정부의 책임이 큽니다.

억울하게 일한 대가라도 내놓으라는 피해자들의 소송에 일본 정부는 노골적으로 개입해 일본 기업들이 나서지 못하게 막아섰고, 앞장 서서 소송을 지연시켰습니다.

 

외무성이 '시간끌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소송 서류 전달 과정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협약 체결국들이 재판을 진행할 때 관련 서류를 송달하기 위해 맺은 '헤이그 협약' 에 따라 소송 서류는

‘한국 법원→법원행정처→일본 외무성→일본 법원→일본 기업’의 경로로 전달됩니다.

 

하지만 늘 '외무성' 단계에서 송달 절차는 멈춰섰습니다.

소송 서류가 일본에만 가면 감쪽같이 행방을 감추는 일이 계속됐습니다. 

결국 법원은 소송 상대방이 서류를 받지 않거나 재판에 응하지 않을 경우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에 올린 뒤

서류가 전달된 것으로 여기는 공시송달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본 외무성


외무성은 딱 한 차례, 2019년 7월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 자산에 대한 압류 결정문의 송달을 촉탁하는

‘해외송달 요청서’를 5개월 만에 대구지법 포항지원에 돌려보냈습니다. 반송 사유도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의 소송대리인들은 "심증은 확실하지만 물증은 없다"고 말합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송달 절차가 왜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지,

정말로 외무성이 모든 강제징용 소송 송달에 관여하는 것인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도 없습니다.

소송이 제기된 일부 기업들과 외무성에 직접 확인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질의문을 보낸 소송 대상 기업은 2020년 초 제소된 가와사키중공업, 니시마쓰건설, 미쓰비시머티리얼,

미쓰비시중공업, 니혼코크스, 훗카이도탄광기선 등 여섯 곳입니다.

전화와 기업의 홈페이지를 통해 다음과 같이 질의했습니다.

 

▶한국의 원고 측이 보낸 소송 서류가 전달됐습니까? 

▶전달됐다면 언제 전달됐습니까? 

▶그 후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까? 

▶소송에는 어떻게 대응할 계획입니까? 

▶소송과 관련해 일본 정부와 협의를 하고 있습니까?

 

가와사키중공업은 메일을 통해 답을 받았습니다. 가와사키중공업의 제소 날짜는 2020년 1월 14일이고,

기자가 답장을 받은 건 그로부터 약 2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앞서 문의하신 태평양전쟁 시 징용공 소송의 건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현 시점에서 소장을 받지 않아 구체적인 소송 내용은 알지 못합니다.

 

훗카이도탄광기선은 몇 차례 전화를 통해 답을 들었습니다.

처음엔 기업 담당 변호사에게 확인하라고 하더니 지난해 말 결국 담당 직원이 답변했습니다.

 

훗카이도 탄광기선 : 회사에서는 제3자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라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에 답변을 없습니다. 

기자 : 소송 자체는 있었습니까? 훗카이도 탄광기선 : 이 이상의 언급은 삼가겠습니다. 

기자 : 소송 서류가 도착했는지만이라도 확인하고 싶은데요. 그것도 어렵습니까? 

훗카이도 탄광기선 : 어떤 말씀도 드릴 수 없습니다. 

기자 : 그게 회사의 방침입니까? 훗카이도 탄광기선 : 네 그렇습니다.

 

이후 훗카이도탄광기선은 제소일로부터 2년가량이 지난 올해 초 소송대리인을 선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외무성에도 다음 내용을 공식 질의했습니다.

 

▶한국에서 기업 측에 보낸 소송 관련 서류가 외무성으로 배송됐습니까? 

▶외무성은 서류를 해당 기업에 보냈습니까? 보내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소송과 관련해 외무성이 기업 측에 전하는 방침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담당부서에서 확인 후 답을 준다는 연락 이후 이틀 만인 6월 10일 답장이 왔습니다. 

답은 예상보다 더 짧고 간단했습니다.

외무성이 보낸 짧은 한 문장에서 유독 '한국 국내 재판'이란 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 내부 문제라는 걸 강조한 걸로 보입니다.

소송 서류의 행방은 모른다고도 하지 않았고. 긍정,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답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한국 국내 재판의 절차상의 대응에 대해 일일이 답변하는 것은 삼가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양금덕 할머니의 경우, 2012년 광주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뒤로 1,2심과 대법원 승소,
지금의 현금화 절차까지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1999년부터 10년 동안은 일본 내에서 소송이 진행됐습니다.
2월 별세한 미쓰비시중공업 강제징용 피해자 박해옥 할머니. 2018년 소송에서 승소했고 지난해 압류가 확정됐다

보통은 10년 안팎, 20년이 넘도록 재판에 아무런 진전이 없는 피해자들도 있습니다. 외무성이 의도적으로 송달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하루하루가 다른 8,90대 고령의 피해자들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온 것입니다.

실제로 긴 세월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강제징용 피해 원고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소송 시간끌기가 누구에 의해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 정확한 경위를 밝히려는 노력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종익 기자 (jigu@kbs.co.kr)